헤어인사이트

디자이너라는 이름의 인플레이션

디자이너라는 이름의 인플레이션

국내 이·미용업에는 약 17만 개의 사업체와 24만 명의 종사자가 있습니다. 전체 미용인 규모는 약 37만 명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자격·면허 보유자 등을 포함한 전체 미용인과 실제 사업체에서 일하는 종사자는 집계 기준이 다릅니다. 사업체 종사자만 놓고 계산하면 한 곳당 약 1.4명입니다. 1인 미용실이 많은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많은 사업체가 한정된 현장 인력을 나눠 가져야 하는 구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런 인력 구조의 변화는 미용실의 교육 방식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는데요. 과거 미용업에서는 인턴으로 몇 년간 근무하며 단계적으로 기술을 익힌 뒤 디자이너로 승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력 부족이 커지면서 기존의 장기 인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업주 입장에서는 장기간 인턴을 고용할수록 비용 부담이 커졌고, 인턴 입장에서도 몇 년씩 승급을 기다리는 방식을 이전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됐습니다.

결국 살롱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교육기간과 승급기간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배우는가보다 얼마나 빠르게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가가 채용 경쟁력 중 하나가 됐습니다. ‘1년 만에 디자이너’, ‘6개월 만에 디자이너’ 같은 문구가 등장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빠른 승급은 인턴을 채용하기 위한 강력한 조건이 됐고, 불필요하게 길었던 대기 시간을 줄이고 교육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실제로 짧은 교육기간을 거친 뒤 빠르게 자리를 잡는 디자이너들도 존재합니다.

문제는 빠른 데뷔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줄인 만큼 무엇으로 그 시간을 채우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빨라진 승급, 줄어든 시간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고 계속 성장하는 사람은 빠른 데뷔 이후에도 발전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 시스템은 일부 뛰어난 사람의 성공 사례만을 기준으로 설계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 현장에서 고객의 조건을 파악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빠른 데뷔가 곧 잘못된 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교육기간을 줄이는 것만으로 기존에 시간이 담당했던 경험과 판단까지 함께 압축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술을 반복하는 횟수, 서로 다른 두상과 모질을 경험하는 과정, 실패한 결과를 다시 수정해보는 시간은 결국 일정한 물리적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디자이너로 승급하는 순간부터 환경은 크게 달라집니다. 어제까지 배우던 인턴도 디자이너가 되는 순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습니다. 자신의 가격이 생기고 고객이 생기며,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위치에도 서게 됩니다. 직급의 변화는 책임의 변화를 만들고, 동시에 배움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인턴일 때의 실패와 디자이너가 된 이후의 실패는 체감이 다릅니다. 고객의 비용과 만족도가 직접 연결되고, 결과를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디자이너로 데뷔한 이후에도 계속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승급하는 순간을 교육의 졸업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배울 곳은 많아졌는데, 무엇을 보고 배우고 있을까

교육 환경 자체는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SNS를 통해 국내외 디자이너의 작업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유명 디자이너의 교육 영상을 접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선택하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과거 특정 지역이나 살롱에 있어야만 접할 수 있었던 정보가 이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자를 선택하는 기준 역시 달라졌습니다. 팔로워 수와 조회수, 영상의 완성도, SNS에서의 인지도는 교육자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고 선택받는 것 역시 하나의 능력입니다. 다만 잘 보여주는 능력과 잘 가르치는 능력은 같은 능력이 아닙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과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설명하는 것 역시 다른 영역입니다.

팔로워 수는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지만 교육의 깊이까지 대신 증명해주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교육일수록 자연스럽게 ‘패턴’ 중심으로 흐르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이 스타일은 이 각도, 이 구간은 이렇게, 이 순서대로. 패턴 교육은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초보자가 작업의 순서와 형태를 익히기 위해서는 일정한 패턴도 필요합니다. 다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만 외우게 되는 순간 한계가 생깁니다.

교육에서 봤던 모델과 실제 고객의 두상, 모질, 모량, 길이가 비슷하다면 배운 패턴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조금만 달라지는 순간 같은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패턴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을 보고 방법을 바꿀 수 있는 판단입니다.

Designer Title Inflation

지금의 현상을 하나의 표현으로 정리한다면 ‘Designer Title Inflation’, 즉 디자이너 타이틀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승급 속도는 분명 빨라졌습니다. 과거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디자이너가 되고, 더 빠르게 고객을 만나게 됐습니다. 하지만 과거 ‘디자이너’라는 이름 안에 자연스럽게 포함돼 있던 경험과 현장 판단, 숙련까지 같은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빠른 승급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은 그 다음에 있습니다. 시간을 줄였다면, 그 시간 안에 담기 어려워진 교육의 깊이는 무엇으로 보완할 것인가.

빠른 데뷔가 하나의 현실이 됐다면 데뷔 이후의 교육은 이전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패턴을 외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마다 다른 조건을 읽고, 배운 것을 응용하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 앞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 함께 필요합니다.

어쩌면 지금 미용업에 부족한 것은 단순히 한 명의 디자이너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고객의 두상과 모질, 상황을 읽고 자신이 배운 것을 응용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미용사.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얻는가보다, 그 이름 안에 어떤 능력을 채워 넣을 것인가에 가까워 보입니다.

    쪽지 팔로우
    팔로우하고 알림받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이미지 보기
고민상담
?
비밀톡
인사이트
로그인